세상 밝히는 노란 불빛, ‘노란봉투 캠페인’ 첫 기부자 배춘환님
사람 2015. 5. 14. 14:31 |과거 노란봉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희망의 월급봉투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노란봉투에는 다른 것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해고통지서. 가족의 희망이었던 노란봉투는 어느새 가족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이 바로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노란봉투 캠페인’이다.
손해배상가압류로 경제적 위기에 처한 노동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노란봉투 캠페인은 4개월 만에 무려 4만7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하며 작지만 큰 기적을 만들어냈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손배 가압류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정치권이 법 개정에 나서는 등 굵직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절망의 상징으로 변해가던 노란봉투가 다시금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로 변신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고 또 무엇이 그대로 남았을까. 노란봉투 캠페인의 첫 기부자 배춘환 님을 만난 것은 그래서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용기, 노란봉투 캠페인
<노란봉투의 기적, 그 시작을 열어준 배춘환 기부자님>
2013년 11월, 그때까지만 해도 배춘환 기부자님은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였다. 평생 300만 원 이상 현금을 손에 쥐어본 적 없는 소시민으로 살아왔고, 하루라도 세금이 밀리면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로 소심한 성품의 소유자인데다, 정치적 성향은 굳이 묻는다면 보수에 가까웠다. 그랬던 그녀가 2013년 정치적으로 가장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던 손배 가압류 문제에 손을 들고 나섰다. 이유가 있었다.
“사실 저는 정치적인 문제는 잘 몰라요. 하지만 일자리가 없고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47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빚을 지운다는 건, 세련된 용어는 아니지만, 굉장히 치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5년간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으로 이미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어떻게 또다시 그 많은 돈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지?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또 제가 당시 셋째를 임신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더 화가 난 것 같아요. 싱글로 살다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뒤이어 셋째를 뱃속에 품으면서 제 인생은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는데 노동자 분들은 해고를 당한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린 거잖아요. 5~6년 세월 동안 한 가지를 위해 싸운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동안 아이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낸 거죠.”
<배춘환 기부자님이 시사인에 보낸 4만7천 원>
2013년 12월, 배춘환 님은 당시 손에 쥐고 있던 큰아이 태권도 학원비 4만7천 원을 노란봉투에 담아 주간지 <시사인>에 보냈다. 함께 동봉한 편지에는 ‘누군가는 당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무너지지 말고 힘을 내달라, 비록 적은 돈이지만 손배소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9만9999명이 함께 나서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리고 2014년 2월, 그녀의 뜻에 공감한 아름다운재단은 시사인과 함께 4개월 동안 노란봉투 캠페인을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 사람의 작은 외침은 무려 4만7,546명의 함성으로 커져갔고, 4만7천원에 불과했던 돈이 무려 14억6,867만4,745원이라는 거액을 모으는 마중물이 된 것이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배춘환 님은 두근두근 설렘을 느꼈다.
<4만7,546명의 희망을 담은 노란봉투 >
“처음 편지를 보낼 때만 해도 세상이 너무 깜깜했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하나, 절망감이 가득했죠. 그런데 노란봉투 모금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세상에 촛불이 하나씩 켜지더니 점점 밝아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아름다운재단에 모금 사이트가 열렸을 때 수시로 들어가서 숫자가 늘어나는 걸 확인했는데 얼마나 설레던지 세상이 온통 노란빛으로 보이더라고요. 그 덕분에 셋째를 건강하게 낳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큰 기쁨은 ‘나중에 우리 아이가 커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주겠구나’ 작은 희망을 발견한 거죠.”
절망의 노란봉투, 다시 희망의 메신저 되다
하지만 늘 꽃길만 이어진 건 아니다. 금방 따뜻한 봄이 올 줄 알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손배 가압류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일부 지인들조차도 ‘노란봉투 보내도 달라진 거 하나 없는데 뭘 더 하려고 하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이다. 정치권에선 손배 가압류 제한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배춘환 기부자님도 처음엔 절망감을 느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캠페인에 동참했음에도 미동조차 없는 현실 앞에 무거운 마음을 감출 길 없었다. 지난해 6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모금액 전달식에서는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하지만 겨울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결국엔 반드시 봄이 오는 법! 배춘환 님은 요즘 다시 희망의 새싹을 발견해가고 있다. 최근에 관람한 연극 <노란봉투>도 그중 하나다.
<문화를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소통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는 배춘환 기부자님>
“보통 파업을 하게 되면 빨간 띠에 과격한 구호가 등장하잖아요. 그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호소하지만, 일반 시민은 도저히 낄 수 없는 굉장히 두껍고 높은 벽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노란봉투> 연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화의 힘은 역시 대단하구나!’ 단순히 노사관계를 뛰어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죠.
빨간 티와 과격한 구호 뒤에 가려진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저절로 몰입이 되는 거예요.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 거죠. 시민사회나 정치권의 역할도 분명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만드는 건 문화의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연극 <노란봉투>처럼 문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배춘환 님은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이웃과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로 만들고 싶다는 꿈. 마흔에 다시 대학에 들어간 건 그래서다. 어린 후배들과의 동문수학이 결코 쉽지 않지만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답을 찾기 위해 지식의 최전선을 넘나들고 있다. 그녀에게서 스무 살 못지않은 열정과 긍정의 에너지를 느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의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의 밑거름이 된다는 말이 있다. 배춘환 씨가 일궈낸 노란봉투의 기적은 앞으로 더 많은 희망을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녀의 꿈도 희망의 영양분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글. 권지희 사진.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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