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나눔운동의 독해법 / 윤정숙
초등 교과서에 모범사례로 소개된
나눔운동이 네거티브 선거로
난타당했으니 아이들은 뭘 느낄까
한겨레
»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비로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뭔지 알았다. 투표일 50일 전부터 언론은 하루도 빠짐없이 ‘의혹’과 ‘불법’이라는 거짓 주장을 그대로 베꼈고, 정치인들은 번갈아 등판하여 ‘대가성 기부’, ‘좌파의 자금줄’이라며 음해와 삿대질을 하였다. 어느 나라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기부와 나눔운동이 네거티브 선거전략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작지만 큰 1% 나눔운동’이라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모범사례로 소개된 아름다운재단의 나눔운동이 1년도 안 되어 네거티브 선거로 난타당했으니 선생님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오래전에 유통기한을 넘긴 ‘아니 땐 굴뚝’ 전략을 이용해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던 것을 보면, 민심과 나눔운동에 대한 독해수준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번 선거는 낡은 정치패러다임에 대한 경고이며, ‘변화’를 기다렸던 사람들의 대합창이었다. 오래된 자선패러다임과 나눔운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기부금의 전체 규모와 개인 기부금이 크게 늘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변화를 모두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기부금의 크기보다, 돈으로 만들어낸 ‘변화의 크기’이다. 자선과 나눔운동이 어떻게 사회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담론과 다양한 실험이 등장하고, 결과에 대한 효과 측정의 도구도 개발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재단협의회’가 주최한 회의에 참석했는데 주제는 ‘사회변화, 사회정의, 사회혁신’이었다. 록펠러나 카네기재단처럼 큰 재단의 리더들은 물론, 작은 지역재단들과 수많은 풀뿌리단체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회변화를 위해 그들이 해야 할 역할과 책무를 재확인하며, 풀뿌리단체들과는 어떤 협력관계를 맺어야 ‘정의와 혁신’을 세워갈 수 있는지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난민, 이주민, 동성애, 풀뿌리운동, 기후변화 등 당면한 사회문제들을 둘러싼 회의 풍경은 우리의 착한 자선사업의 개안을 재촉한다. 어느 발표와 토론에서도 나눔을 낡은 좌우이념의 틀에 집어넣거나 단순 자선사업으로 묶어두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것을 정부 복지사업의 공백을 메우는 보조수단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미국 재단협의회 회장 스티브 건더슨은 “자선은 혁신과 창의성에 관한 것이며, 모험을 하는 것”이라며 “모험을 한다는 것은 정부나 어떤 제도가 시도해본 적 없는 새로운 해법을 찾는 실험적인 사업을 기꺼이 지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눔운동에 대한 이런 해석은 우리의 자선과 나눔운동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또하나의 길을 만드는 독립된 시민의 영역이며, 기부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선택한 선의의 투자라 말한다. 기부하는 사람도, 모금을 하는 조직도 돈이 가치있는 변화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를 원한다.

최근 등장한 ‘소셜펀딩’ 혹은 ‘크라우드펀딩’은 개미 기부자들이 이끌어가는 나눔운동의 흥미로운 예고편이다. 자신들이 관심 가진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부도 하고 스스로 모금도 하는 시민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작은 도서관을 지원하고, 지원을 못 받는 독립영화나 가난한 인디밴드를 지원하기 위해 기꺼이 기부하면서 나누는 삶을 연습한다. 나눔의 무대와 객석을 오가는 이들의 참여는 타인의 자리에 서보는 공감의 관계맺기를 통해 스스로 변화의 주인이 되려는 선택을 하면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자기 안의 힘을 서로 확인한다. 나눔운동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폭이 넓어지고, 살아 움직인다. 나눔운동은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드는 창의와 모험의 영역이다. 이것이 나눔에 대한 개념 있는 독해가 아닐까.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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