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김장훈법’의 효과 / 윤정숙
초고액기부를 ‘명예’라 정의하면,
소액기부자들과 자원활동가들의
소리없는 나눔은 뭐라 불러야 하나
한겨레
»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이번 정기국회에 ‘명예기부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발의되었다. 일명 ‘김장훈법’. 의무인 세금과 달리 개인의 선택인 기부가, 그것도 초고액 기부자가 칭찬과 예우를 받는 건 당연하다. 법에 따르면 30억원 이상 기부자를 ‘명예기부자’라 명하고, 그들 중 60살 넘어 재산이 1억원 이하에 소득이 없을 경우 국가가 생활보조금, 병원비, 장례비를 지원한다. 명예기부자는 행정안전부가 등록·관리해야 하고, 우수기부자 증명서를 발급하며, 본인 동의하에 명단을 공개한다. 그들을 서훈 대상자로 추천할 수 있으며, 매년 이들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이 법은 네모난 바퀴를 단 자전거를 보는 것처럼 어색하다. ‘명예기부자’의 이름으로 정부 부처에 등록·관리되기를 원하는 기부자가 얼마나 될까. 어려워진 노후생활을 국가가 지원함으로써 고액기부자의 명예를 높이고, 기부제도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법의 목적(1조)은 이뤄질까. “이런 제도가 보장돼 있으면 과감히 기부할 것”이라는, 대표 발의한 의원의 기대처럼 이 법이 거액기부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지난해 수백억원을 기부한 원로 기업인을 만났다. 그는 “실패를 필수품”으로 여기며 고생 끝에 기업을 키웠고 십년 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 대학에 큰 기부를 했다. 그건 “나이 들어 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돈을 이기는 것은 가장 훌륭한 삶의 척도”라며, 기부는 조건 없이 주고, 주고는 잊어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 부를 성취한 뒤에 사회에 돌려준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을 보았다.

그처럼 거액기부는 아니지만,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려는 부유층이 늘고 있다. 한 조사를 보면 응답한 부자들 중 98%가 앞으로 기부할 의향이 있고, 60%는 유산 일부를 기부할 계획도 있다 했다. 기부 동기가 사회적 책임과 가치 실현이라는 그들의 대부분은 사십대에서 육십대였으니, 우리에게 익숙한 노후 ‘청산형 기부’의 전통적 미담과는 다른 생전 기부와 계획 기부가 늘 것이다. 고액기부 촉진을 위한 법제도를 연구해 달라고 기부하는 부유층 기부자도 등장했으니, 대물림에 골몰했던 혈연적 ‘부의 이전’ 방식도 서서히 변화될 것이라 예측된다.

초고액기부를 ‘명예’라 정의하면, 수많은 소액기부자들과 자원활동가들의 소리없는 나눔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어머니와 딸까지 삼대가 십년 넘게 여러 곳에 정기적으로 기부해온, 구두닦이가 생업인 한 기부자는 기부는 다 같은 것인데 특별히 명예기부자라 하는 게 형평에 맞는 일이냐고 묻는다. 보상과 대가를 생각 않고 꾸준히 기부하며 나누는 삶의 기쁨과 함께 사는 사회를 꿈꾸는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걱정된다.

기부가 시민들의 생활코드로 자리잡아가는 지금, 이 법은 시민 기부문화의 질적 성장 흐름과는 엇박자로 보인다. 상위 5%가 전체 기부금의 45%를 차지하는 미국의 기부문화는 ‘명예기부자’를 국가가 관리·기념하고 노후지원을 해서가 아니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부유층 기부의 ‘동기와 장애’ 요인에 관한 꾸준한 연구가 이뤄졌다. 이로써 각종 세제 개선, 공익신탁, ‘계획 기부’ 제도와 기부자 자문 서비스도 체계화되어 갔으며, 비영리영역의 주요 성장동력인 ‘자선적 자본’의 잠재풀인 고액기부의 규모도 확장되었다.

국가가 주도하는 고액기부자 관리와 보상 방식으로, ‘유공자화’하는 행사를 통해서 과감한 기부나 기부 활성화를 그리 기대하긴 어렵다. 본인이 원한다면 어려워진 ‘명예기부자’ 지원은 고려해야 한다. 다만,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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