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만 28개월 된 아들이 있다. 바로 이 녀석이다.

나에게 많은 변화를 안겨준 소중한 아들 지섭이 ⓒ 김진아

이 녀석을 만난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이들어 아이를 낳으니 출산 후에 몸 이곳 저곳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사고방식도, 이해의 폭도 달라졌다. 육아로 힘들어하는 엄마들의 처지도 이해하게 됐다. 특히 일하면서 육아를 해야 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알게 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아이 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직장맘'들을 보면서 "그렇게 일에 대해 완벽한 책임을 보여주지 못하건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던 나였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정말 "부득이한 사정"이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 바뀐 점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집이란 그저 다리 쭉 뻗고 누울 정도만 되면 오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보니 '집이란 쉬고 먹고 놀고 이따금 뛰어놀 수도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일이 있었다. 아들이 15개월쯤 되자 곧잘 걷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독 얌전하던 우리 아들. 집에서 뛰는 법이 없었다. 다른 집 아들들은 그 맘때쯤이면 너무 뛰어다녀 층간 소음으로 곧잘 분쟁도 일어난다는데... 집에서 뛰는 법이 없는 우리 아들을 보며 난 그저 '조용한 아빠의 기질을 닮아서 그런가보다'하고 생각했다.

다른 엄마들에겐  "우리 아들은 정말 얌전해서 뛰는 법도 없고 서랍장 밟고 올라가지도 않아요"라고 자랑섞인 속내를 비추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광경을 포착하게 됐다. 친정집 거실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노는 아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 뿐이 아니었다. 시댁에만 가면 자리에 앉지도 않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때 알았다. 우리 아들이 얌전해서 뛰지 않은 게 아니라 우리 집이 너무 좁아서 못 뛴거란 걸.

18평 안팎의 다세대 빌라. 방2개. 안방엔 옷장과 침대가 가득하게 차 있고 다른 방엔 책상과 책장이 가득 메우고 있다. 주방과 거실이 이어진, 아니 딱히 거실이랄 게 없는 집. 어른들이야 누워 자고 먹고 하면 그만이었지만, 지섭이가 편하게 놀기엔 무척이나 좁았던 모양이었다. 조금이라도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의논을 했다. 지금 사는 집은 결로도 심했다. 창문 근처에 곰팡이도 좀 있고 해서 지섭이에게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올해 4월이면 2년의 임대차기간도 만료가 되니, 이사를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돈이었다.

전셋값이 무척 올라있었다. 한켠에선 '전세대란'이란 얘기도 나왔다. 20~22평의 아파트 전세 시세가 무려 1억1천만 원이상. 마음에 드는 위치와 평수를 고려해보니 적어도 1억2천만원은 있어야 했다. 지금 전셋집은 5천만원안팎이니, 지금의 전세자금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있는 집이 없었다. 전세자금대출을 받기로 했다. 전세자금대출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의 직장근로자인 내가 택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의 대출은 <근로자전세자금대출>이었다. 국민주택기금으로 지원하는 전세대출은 금리가 낮다. 연 4%이며 전세금의 70% 내에서 최대 8000만 원까지 가능하다. 신혼부부를 위한 전세자금대출도 있었지만, 결혼한지 5년이 넘은 우리는 해당되지 않았다. <저소득전세자금대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은행을 방문했다. 은행 직원을 통해 최대로 대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알아봤다. 대출가능금액은 5천5백만원. 와우. 빚이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 있는 전세자금에 5천5백대출을 받으면 어렵게 전셋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출가능금액을 확인했으니, 남은 일은 전셋집 알아보기. 우선 남편은 이사가능한 지역을 알아봤다. 남편이 하는 일 때문에 지금 있는 곳에서 멀리갈 수는 없었다. 인근에서 알아보기로 했다. 물망에 오른 곳은 두곳. 가격대비 평수가 넓게 빠졌다는 주공아파트와 평소부터 내가 살고 싶어했던 빌라단지가 1,2순위가 되었다. 연수는 모두 10년이 넘었지만, 그나마 지역에서는 '살만한 곳'이라고 얘기되는 곳이었다.


1순위로 물망에 오른 주공아파트. 같은 평수여도 실평수가 넓다는 이곳은 남편 일터와 내 직장, 아들 어린이집과의 거리도 괜찮아보였다. ⓒ네이버이미지

2순위로 물망에 오른 빌라단지인데, 고층 아파트를 싫어하는 내 마음에 쏙 든 곳이다. 정원도 매우 잘 꾸며져 있어, 살고 싶은 곳이다.ⓒ 네이버이미지

남편과 시간을 내어 여러군데 집을 보았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기 쉽지 않았다. 금액이 맞아서 가보면 집이 마음에 안 들고, 집이 마음에 들면 이사날짜와 금액이 안 맞았다.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저녁쯤에 인터넷에서 <급전세>로 나온 집을 보았다. 내가 가고 싶어하던 빌라단지 1층 전세였다.

평수는 무려 30여평. 놀랍게도 금액도 우리가 예상한 금액보다 쌌다. 오, 이런 놀라운 일이.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급하게 집을 보러 갔다. 이미 비어있는 집이었다. 부동산 중개인 말로는 "약간의 대출이 있는데, 별 문제 되지 않는 금액"이라면서 "집주인들 약간씩 대출은 다 있는 거다. 대출이 8천만 원 정도 있긴 하지만, 전체 집값을 따져보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니 좋은 조건이다. 집이 마음에 든다면 망설이지 말고 결정해라"며 종용했다. 약간 망설이고 있는데, 때마침 부동산중개인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가 본 '급전세'를 보고 싶어하는 세입자가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남편에게 "약간의 부채가 있다고는 하지만, 부동산에서 그렇게 문제되는 게 아니라고 하니 이 집으로 결정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넓은 집에 싸게 들어갈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잖아요"라고 덧붙였다. 워낙 크게 반대하는 성격이 아닌 남편은 "당신이 마음에 들면 그렇게 해요"라면서 동의했다.

부동산중개인은  "당장 계약하기는 어려우니 가계약금을 걸라"면서 당장 계약서를 쓰자고 서둘렀다. 우리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계약을 위해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썼다. 그때 이사갈 집의 등기부등본을 보여줬다. 확인을 하는 중에 이상한 걸 발견했다. 채권최고액 2억 5천만원.

'이상하다. 채권최고액은 뭐지? 그리고 채권최고액이 왜 이렇게 많지? 아깐느 8천만 원이라고 했던 것같은데..'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걸 알아차리기로 하듯 부동산중개인이 말했다. "아, 걱정마세요. 이 금액은 계약할 때 감액등기해서 아까 말한 8천만원 융자만 남기기로 집주인하고 얘기됐어요"라고 말했다. 너무 확신있게 말하는 중개업자의 얘기를 듣고 별 의심없이 계약서를 썼다. 그리고 계약금의 10%에 해당하는 100여만원의 금액을 집주인에게 입금하라고 했다. 그래야 가계약이 성사되는 거라고.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계좌를 이체했다. 감액등기가 뭔지, 채권최고액이 뭔지는 몰랐지만 우리보다 더 전문가인 부동산중개인이 괜찮다고 하는 거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일은 잘 진행되는 듯 싶었다. 문제는 그 다음 날이었다.

<2편에 계속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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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보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김진아 간사
함께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낙천주의자. 존 레넌의 연인이자, 전위예술가인 오노요코의 "혼자만 꾸는 꿈은 꿈일 뿐이며,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란 말을 좋아합니다. 이른둥이를 지원하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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