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이 엄마의 좌충우돌 전셋집 구하기(1)를 쓴지 벌써 2달이 다 되어가네요. 담당한 이른둥이 치료비 지원사업 공모, 배분, 사업보고서 제작 등 업무가 너무 많아 블로그에 글을 쓸 시간조차 없었네요. 그래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기에(!!!) 더 늦기 전에 2편을 정리합니다. 1편을 보신지 너무 오래 돼 기억이 안 나신다면, 링크를 확인하세요~ ^^

 

 

 

원하던 집으로 계약을 하기로 했으니, 기분이 좋아야 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채권최고액 2억 5천만원'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중개인은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 집주인과의 계약은 3일 뒤였다. 그 전에 뭔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뭔가 가슴 속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의혹'을 확인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ㅡ,ㅡ;  '분노의 검색질'이 시작됐다.

 

나의 검색리스트 중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두가지였다.

- 채권최고액

- 감액등기

검색포털에서 채권최고액, 감액등기 등을 검색했다. 채권최고액, 감액등기. 모두 자동검색어로 잡혔다(아, 느낌이 안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빈번하게 검색되는 검색어란 얘기였다. 우선 채권최고액의 뜻을 찾아보았다.

 

 근저당권으로 담보되는 채권은 현재 또는 장래에 발생할 채권으로 일정한 금액을 한도로 설정되며 이를 채권최고액이라고 한다. 일반채권에 비해 우선변제권이 있는 금액의 한도로 표시하는 채권최고액은 실제 채권보다 20~30% 높게 설정된다. 이는 대출받은 회사나 개인이 이자를 연체하거나 채무액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은행에서 높게 설정하는 것이다.

 

집을 담보로 융자를 받았다는 뜻이구나. 거기다 다른 무엇보다 그 집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융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채권최고액이란 실제 융자금액에 20~30%을 추가로 융자로 잡은 총 금액을 말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내가 가계약한 집의 채권최고액이 2억5천이니, 실제로 2억이 넘는 돈을 은행에서 빌렸다는 말이었다.

(오, 마이;;)

 

내친 김에 감액등기도 검색했다. 감액등기는 사전에 나와있는 단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용을 정리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감액'하여 '등기'한다는 말이다. 집을 담보로 받은 융자금의 일부를 갚아 채권최고액의 규모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그냥 은행에 갚기만 해서는 안 되고, 등기부등본상에 채권최고액이 기록되도록 등기해야 한다.

 

더 놀라운 건 대한민국 많은 국민들의 잡학지식이 다 모여있는 <네*버 지식IN>에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나 둘, 글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점점 심각해졌다. 사람들의 질문은 주로 이런거였다.

 

 

나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달린 답변을 꼼꼼히 읽어봤다. 대략 질문은 "전세 입주하려는 집 채권최고액이 너무 높다"는 거였다. 채권최고액이 설정돼 있다는 건, 만일 집주인에게 경제적인 문제가 생겨 누군가가 재산을 압류하거나 재산을 회수하려는 일이 발생할 때 채권최고액 설정을 해놓은 금융권에서 돈을 먼저 가져간다는 말이었다. 그 금융권에서 자기가 빌려준 돈을 가져가고 나서야 내가 남은 돈에서 내 전세보증금을 가져갈 수 있는 거였다. 그러니, 채권최고액 금액이 클수록 내가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전세금)이 적어지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1) 가능한 근저당 설정이 없는 집(쉽게 말해 융자 없는 집)에 전세 입주할 것

2) 부득이하게 채권최고액이 설정돼 있다면, 안전한 비율인지 확인할 것

   : 건물가액 70% -(보증금+ 융자 채권최고액)}= 0 (안전한 비율)

3) 현재는 채권최고액이 높지만, 합의 아래 '감액등기'를 한다면, 감액등기를 정확하게 시행할 것

이렇게 3가지였다.

 

내가 전세입주하려는 집의 시세를 알아보았다. 대략 2억5천~6천 정도였다. 최근에는 집값이 떨어지는 추세여서 그것보다 못 받을 수도 있었다. 주인이 감액등기를 해주겠다는 조건은 대출 원금을 8천만원만 남기겠다는 것. 하지만 채권최고액은 보통 20~30%를 높게 설정하니, 실제로 남게 될 채권최고액은 1억은 넘을 확률이 높았다. 감액등기 해준다는 전제 아래(8천만 남기고) 안전하다는 계산식에 넣어보았다.

 

182,000,000(건물 시세 70%) - 120,000,000(전세보증금) + 104,000,000(감액등기 후 채권최고액) =  -42,000,000원

 

아... 뭔가 위험한 계약을 한 거였다. 건물 시세와 전세보증금, 융자 채권최고액을 계산식에 넣어보니. -가 발생하고 말았다. 최소한 0에 가까워야 한다는데, 0은커녕 만일의 경우 손해를 볼 것이 뻔한 위험한 계약인거였다. 물론, 별 탈 없이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닌가.

 

게다가 감액등기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일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감액등기 이행이 약속처럼 잘 되지 않아 고민하는 전세임차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감액등기를 제대로 하려면 집주인과 같이 은행에 가서 융자금을 갚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데, 알아보니 집주인이 융자를 받은 은행도 전라도였다(이게 뭥미;;). 수도권 은행도 많은데, 하필 지방까지 내려가 대출을 받은걸까. ㅠㅠ 내가 직접 감액등기 과정을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 속은 뒤죽박죽, 심장이 벌령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아, 100만원 가계약금도 걸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와서 계약을 파기하자고 하면 100만원을 날릴게 뻔했다. 아니, 2배를 물어내야 할지도 몰랐다. 일을 해도, 빨래를 해도, 설거지를 해도...마음이 무거웠다. 

 

 

 

 남편과 의논했다. 남편은 나의 걱정이 너무 지나친 거라고 했다. 그가 워낙 느긋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그는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만일의 사건 때문에 너무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또, 우리가 지불하는 금액 대비 넓은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이미 불안감과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진 나는 그저 이 계약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리가 걸었던 가계약금 100만원을 손해볼 생각도 해야했다. 어차피 계약금은 계약을 파기할 경우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부동산중개인에게 전화가 왔다. 집주인이 계약 날짜를 바꾸고 싶다는 거였다. 집주인이 장기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날짜가 변경됐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 계약이 영 탐탁치 않던 나는 계약날짜를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부동산중개인은 난처한 듯, 집이 마음에 들고 좋은 가격에 나왔는데 잠깐 시간 못 내겠냐고 회유했다. 하지만 나는 굳건히 그 시간에 맞추기 어렵다고 했다. 부동산중개인은 시간조정을 위해 무진 애를 쓰는 듯 했다. 그러다 마지막 전화가 왔다.

 

"집주인 되시는 분이 이렇게 시간이 안 맞으면 이 계약 안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아무래도 전세 임차하시는 분이 집주인 분께 시간을 맞춰드려야 하지 않을까요?"라면서.

그러나 나는 이미 이 계약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 잘 됐다 싶기도 해서 "이렇게 시간이 조정이 안 되는 것은 집주인과 저희가 인연이 아닌 거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희한하게도, 며칠을 고민하게 하던 계약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계약금? 아, 다시 돌려받았다. 어차피 집주인쪽에서 계약파기를 먼저 언급해서인지 바로 되돌려주었다. 돌아보면 조금 싱겁고(?) 어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참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경험이다. 처음으로 전세계약의 어려움도 알게 됐고, 돈 없는 서러움도 크게 느끼게 했으며, 채권최고액이니, 감액등기니 몰랐던 사실도 많이 공부하게 됐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 등기부등본도 잘 볼 줄 알게 됐으니 며칠간 받았던 고통은 컸지만 그 소득은 작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부동산중개인의 도움으로 같은 가격대의 아파트를 계약했다. 우리가 그 사건이 있은지 바로 2일 뒤의 일이었다. 지은지 10년 된 아파트지만, 몇년 전 거실을 리모델링해서 내부가 깔끔한 23평 아파트였다. 집주인은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전세금도 500만원이나 깎아주었다. 또, 안방과 작은 방 도배와 장판도 새로 해주기로 했다. 집을 보러간 그날 밤, 바로 계약을 했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었다며 내가 이야기를 하자, 부동산중개인은 이렇게 말했다.

 

"집도 인연이라서, 중개인이 무리하게 계약을 성사시키려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예요. 중개를 하다보면 희한하게 그 집에 살 사람이 다 정해져 있는 것 같다니까요. 지금 이 아파트도 오늘 오전까지 가격 흥정하시던 분이 있었어요. 며칠을 와서 고민하고 흥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결국 그분들은 계약을 못 하게 됐네요. 임대인도, 임차인의 뜻이 서로 맞아야 하는 거죠. 신기하죠?"

 

 

  새로 이사 간 '즐거운 나의 집'(출처:네이버 이미지)

 

지난 5월, 우리 가족은 새집으로 이사했다. 우리 아들은 매일 오전 오후 거실을 뛰어다녀서 말리느라 바쁘지만(층간 소음 때문에) 아이가 집에서 즐겁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 그간의 설움과 대출의 압박도 잊혀진다.(^^;;) 매일 아침 거실 베란다를 통해 환하게 들어오는 햇빝도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베란다에 토마토와 고추도 심었다. 햇살이 잘 들어 아주 잘 자란다. 가족을 모시고 작은 집들이도 했다. 부모님들도 기쁘신지 열심히 아끼면서 살라고 하신다. 몇년이면, 나이 마흔줄이지만. 이제야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번 일을 겪고 보니 문득 더 살기 어렵던 옛날 단칸방에서 방 두칸, 세칸으로 조금씩 살림을 늘려가며 살아왔을 부모님들의 고생도 떠오르니 말이다.

 

대출금의 압박도 있고 남들이 보기에 그리 대단한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매주 해야하는 집청소는 조금 더 버거워졌지만, 참 고마운 집을 쓸고 닦는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자기 방이 생긴 아들을 위해 새로 놓아 준 자석칠판. ⓒ 지섭엄마

 

 한결 넓어진 집 덕분에 조카네 식구가 와서 자기도 했다. 급 밝아지신 아드님. ⓒ 지섭엄마

 

 

느보산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김진아 간사
함께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낙천주의자. 존 레넌의 연인이자, 전위예술가인 오노요코의 "혼자만 꾸는 꿈은 꿈일 뿐이며,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란 말을 좋아합니다. 이른둥이를 지원하는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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