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름다운재단 일을 맡은 후 처음 맞은 추석이었다. 간사들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있는 김군자 할머니에게 인사를 간단다. 알고 보니 김군자 할머니는 현재의 아름다운재단을 가능하게 해 준 가장 소중한 인물이었다. 2000년 출발한 아름다운재단에는 기부자의 이름을 딴 기금이 200여개 만들어져 있다. 기부자의 뜻을 담아 그 뜻에 맞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기금들이다. 김군자 할머니는 아름다운재단 제 1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을 만든 분이다. 열세살 때 고아가 된 후 열일곱 살 때 중국 훈춘으로 끌려가 3년여 동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던 김 할머니. 1998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인 ‘나눔의 집’에서 살고 있는 김 할머니는 2000년 아름다운재단을 찾아 보육원을 퇴소한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평생 모은 5천만원을 내놓았다. 그 후 김 할머니의 뜻에 동참하는 5백79명이 ‘김군자할머니기금’에 기부해 8억2천9백여만원의 기금으로 성장했다. 이 중 5억2천3백여만원은 보육원을 퇴소한 1백70여명 아이들의 대학 장학금으로 13년째 쓰이고 있다.


김군자 할머니 뒤로 기념 부조가 보인다



지난 5월 27일. 아름다운재단에서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간사들이 준비한 김 할머니의 89세 생일파티였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한 김 할머니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부조 현판식, 할머니의 도움으로 공부하고 있는 장학생들의 감사영상 상영, 간사들의 생일축하 공연 등이 이어지자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행복한 순간~” 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생일파티를 준비한 간사들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하나둘씩 맺혀갔다. 


김군자 할머니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었다. 열세살때부터 고아로 혼자 벌어먹고 사느라 한글도 깨우치지 못했고, 3년여간 일본군 위안부로 모진 고통들을 견뎌 내야했다. 자신을 곤경에 빠뜨렸던 조국과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원망 대신 자신처럼 부모 없이 자라는 보육시설 아이들을 살리는 열정을 키웠다. 할머니의 뜻에 공감하는 기부가 이어져 ‘김군자할머니기금’은 매년 자꾸자꾸 커지고 있다. 도움을 받는 아이들의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살다 갔다면, 복수나 회환으로 살아갔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었을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그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  


김군자 할머니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할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흘리던 간사들의 눈물 속에 담긴 마음을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할머니! 저희도 할머니처럼 끝까지 나누겠습니다. 세상에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또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숨기고 싶고,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살겠습니다. 세상에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살겠습니다!”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 김미경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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