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부

칼럼 2011. 6. 27. 14:24 |


유학을 마치고 몇 년간 대학 강사를 지내며 아버님이 주시는 생활비로 버티다 중소기업연구원에 채용되었다.

용인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저녁회식을 하는 도중 어머니로부터 황당한 전화가 왔다. 아버지께서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모 단체에 기부를 하셨다는 내용이었다. 아버님께서는 그간 재벌그룹의 사장을 오랜 기간 역임하시고 퇴직 후 사업을 하시다 은퇴를 하셔서 나름대로 남부럽지 않는 재산을 일구어 놓으셨다. 그런데 그 재산을 큰 자식이 안정된 직장에 채용되었음을 확인하시고는 아무도 몰래 기부를 결정하신 것이다.

함께 60평생을 함께해온 어머니로서는 “당신 재산 혼자 일구었느냐”며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기부를 결정하신 아버님에 대한 서운감과 배신감으로 몸져누우셨다. 나로서도 여간 허망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집도 아버님 명의로 되어 있어 내심 아버님의 재산에 든든했던 나도 아버님의 결정이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지방에 있던 남동생이 올라오고, 누나와 매형 그리고 여동생과 처남이 광화문 근처의 한식집에 모여 함께 대책을 논의하였다.

매형은 “아버님 재산 본인이 처리하셨는데 어찌하겠나. 그 의견을 존중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동생과 나는 재판이라도 해서 일부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님께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였으나, 아버님은 “스스로 재산을 일구어가는 너희만의 희로애락이 담긴 스스로의 인생소설을 쓰라”며 자식 놈들이 독립정신이 부족하다며 크게 꾸짖으셨다.

시간이 지나 그때의 기부단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단체의 간부들은 돈을 다단계사업에 횡령하여 당시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그때의 충격으로 옛날의 영광을 다 잊으셨는지 기억을 일부 상실하는 치매초기 증세를 보이고 계시다. 그럴 때 마다 “아름다운 재단” 같은 신뢰성 있는 재단에 기부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약 부모가 자신의 의지로 기부를 결정했다하더라도, 가족 간 합의가 되지 않은 단독결정이고 아내나 자식들 중에 경제적으로 몹시 궁핍한 사정이 있다고 한다면 기부금의 일부를 기부자 친족의 자립이나 생활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당시 조그마한 중고차를 몰고 다니던 나로서는 차나 한 대 근사한 것으로 뽑아주고 집도 평수가 큰 것으로 사주시고, 아들 유학비도 대주실 것으로 믿었었는데, 모든 게 꿈이 되었으니 당시의 서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사정은 당한 사람만 안다. 직장이 있는 나도 이 정도인데, 생활이 궁핍한 경우라면 기부 받은 단체가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기부된 재산권은 보유하되, 어려운 경제상황에 처해 있는 기부자나 그의 친족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제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오히려 미래에 더 많은 기부금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식이 재산권을 지킬만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는 경우, 기부자 친족의 경제생활을 보장하면서 기부도 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기부단체가 마련한다면 사회적 기여와 자식에 대한 걱정을 함께 충족 및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부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1년 전, 아버님께서 차를 한 대 사주시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대출금 잔액도 갚아 주셨다. 물론 어머님과 자신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신다는 조건이셨다. 생각해보면 아버님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조차 하다. 어머님을 비롯해 가족 전부가 아버님의 기부로 한 때 마음 아파하였지만 오히려 나와 동생은 더 성실한 자세로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님께서도 가족들도 모르게 대학 장학재단에 매년 소액이지만 20년간을 스님을 통해 장학금을 기부해 오셨다는 점이다. 나도 매달 <아름다운재단>에 정말 소액이지만 기부를 하고 있다. 교회나 절에 가서도 가끔 기부금도 내곤 하였지만 기부를 할 때마다 액수 때문에도 망설여지곤 했었다. 그러나 막상 기부금을 내고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진다.

부모님 방에 가면 그때 아버님께서 기부한 단체의 기념식 사진이 걸려있고 어머님께서 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감사패가 자랑스럽게 놓여 있다. 받은 만큼 행복은 나누어 가질 때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되나보다.

동생, 누나의 가족들도 모두 늘 그랬던 것처럼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그 충격을 예전에 극복하시고 늘 그랬던 것처럼 여든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종교협의회와 대학동창회 고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시고 계시다. 한 달 전에는 나와 우이암까지 등산도 다녀오시는 등 건강하시다. 아버님은 기억력을 많이 상실하셨지만 백발에 해맑은 웃음을 지니시곤 늘 소파에 앉아 계신다. 때때로 용돈하라며 출근하는 나에게 돈 만원을 건네 주신다. 그때 마다 눈물이 핑돈다. 늘 그랬지만 아버님은 늘 부자이셨고 지금도 마음이 더 큰 부자시다. 아버지의 황당한 기부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자부심과 행복을 나누어 주었다.








김익성/기부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Beautiful Voice_OUT에 실리는 내용은 아름다운재단의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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