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부의 조건

칼럼 2012. 1. 11. 16:05 |

기부를 한다는 것이 ‘좋은’일인데, 거기다가 '더 좋은 기부’라는 말이 가능한 걸까요?

                                 ⓒ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재단에서 많은 개인기부자, 기업기부자 상담에 참여했었습니다. 보통 영리섹터에서 경험이 많은 기부자분들이시라 배울 점도 많습니다. 특히, 비영리단체의 목표를 정량화된 수치로 재구조화해서 그 성과를 선명하게 만들어내는 것과 조직운영의 효율성에 대한 부분은 특히 영리섹터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부금 지원을 결정하고 지원금을 주는 방식은 영리섹터의 노하우가 그대로 통용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비영리단체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존재한다기보다는 ‘미션에 따라 스스로 장기적인 사회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단기 프로젝트를 지정하여 마치 대행사에 업무를 맡기는 형태로 지원금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리의 기준으로 보면, 돈의 투입과 그 산출이 명확하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집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지원이 비영리단체의 건강한 성장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켠에서는 진정성과 헌신성에 기반한 좋은 비영리활동보다, 눈에 보이는 단기적 결과물을 보기 좋게 만들어내는 프로그램들만 많아진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결국, 지금 한국의 훌륭한 기부자님들이 하고 있는 기부가 '좋은 기부'인지에 대해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기부금으로 더 큰 사회적 성과를 만들고자 하는 기부자들을 위해 연구와 교육,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기관인 New Philanthropy Capital 의 웹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좋은 기부의 조건’들이 그 검토의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소개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맥락이 다른 부분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고, 제 나름의 예시를 추가한 번역문입니다. 길지 않으니 시간이 되시면 원문을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www.philanthropycapital.org/how_we_help/funders/good_giving_principles.aspx

<좋은 기부의 조건>

1. 성과를 만들어 내는 조직에 기부하라
Choose charities based on results
우리는 보통 훌륭한 모금팀을 가진 조직이나 기부금 중 운영비 사용비율이 낮은 기관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기부자인 당신 앞에서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훌륭한 모금팀이나, 당장의 낮은 운영비 비율을 자랑한다 하여 진짜 좋은 사회적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는 단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효율적으로 일을 잘하기 위해 적정한 운영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단체가 지원하려는 대상에 대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기부금 집행과정에서 기부자의 관여를 적절히, 가볍게 설정하라
Keep your engagement with charities ‘light touch’
사업의 목적과 성격에 따라 기부자의 적절한 관여정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부금 집행조직이 기부자 보고에 사용하는 시간과 자원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보고서도 벅차지 않을 만큼, 기부자의 방문횟수도 과하지 않을 만큼....!

3. 특정 프로젝트 보다는 조직 전체를 후원하라 - 지정하지 않은 기부금 주기
Fund whole organisations rather than projects—give unrestricted funding
보통 특정 프로젝트를 정해 기부하게 되는 것은, 그 기부금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었을 때 조직은 스스로의 미션보다는 기부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에 매진하게 된다거나, 실제 현장에서 그때 그때 발생하는 필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역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단체에 ‘어르신 봄나들이 지원’으로 기부금을 주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단체는 연중으로 어르신들을 좀 더 자주 방문하고, 시시때때로 필요한 의식주, 병원 등의 연계를 잘 하는 것이 목적인데 ‘봄나들이’를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과도한 인력을 투여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봄에 어르신들이 대거 독감이라도 걸렸다치면, 나들이가 아니라 긴급하게 병원비나 체력관리를 위한 영양식이 필요해지는데 정작 그를 위한 돈은 없게 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겠지요.

4. 적정한 규모의 기부금 주기 -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게
Make your donation the right size—not too big, not too small
적정한 규모를 계산하기 위한 정해진 공식은 없습니다. 다만, 너무 큰 기부금의 집행을 통한 조직의 급격한 성장은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너무 기부금이 작을 경우 그 보고나 운영에 드는 비용이 사업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조건 없이 주어지는 소액기부금은 언제나 도움이 됩니다.(!!!!!!) 대체로 한 조직의 연수입의 1/3 이상되는 규모의 기부금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조직이 탄탄한 성장전략을 갖고 있는 경우는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5. 여러 해에 걸친 장기 지원 하기
Provide multi-year support, rather than giving a one-off donation
적절한 지원기간은 사례에 따라 다릅니다. 참고로 기부금 배분전문기관의 경우 3년 지원이 많습니다.(한국은 단년지원에 프로그램 지정지원사업이 많아서 건강한 비영리조직의 성장이 어렵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장기 지원이 약속되면, 단체는 좀 더 지속가능한 성과를 만들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워 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 지원단체가 3-5년 장기지원이 약속된다면 매년 어르신 나들이 사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거어르신의 시시때때 나들이를 도와줄 수 있는 기부여행사 네트워크, 자원봉사자 네트워크, 혹은 공짜 민박을 제공해줄 수 있는 전국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를 통해 기부자와 지원조직간에 좀 더 튼튼한 신뢰관계를 만들게 됩니다.

6. 성과측정에 투자하기
Fund measurement
사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어렵고 그에 대한 투자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조직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정확한 성과를 약속하고, 그 수행을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기부금의 일정 부분이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GS칼텍스에서는 성과측정의 방법연구를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별도로 기부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해외에는 비영리활동의 성과 극대화나 효율성재고, 성과측정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그 결과에 따라 비영리 활동 컨설팅, 비영리단체 활동가 교육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내어진 소중한 기부금들이 정말 사회적으로 잘 쓰이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해야 할 것입니다.

 

보사노바 연구교육국전현경 부서장
2003년 아름다운재단 입사 후 모금과 배분사업 좌충우돌 8년차. 해외의 지식은 한국실정과 다름이 있고, 국내사례는 체계적으로 분석정리되지 못한 현실에 도전해볼까 합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indisec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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